정재각 교수

“명상은 가볍게는 심신의 휴식이나 간단한 반성이나 염원을 위해 사용되지만 가장 심오하게는 인간존재의 핵심에 닿으려는 한 방법이다. 초월명상은 촉각을 다투는 현대인들의 실정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서 아침저녁 20분씩 시행함으로써 안정된 마음으로 직장에 출근하고 또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이 개인생활 개선 뿐 아니라 널리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존재의 과학과 생횔의 기술 》 추천사에서

하다영 어린이

안녕하십니까? 저는 3학년 5반 24번 하다영입니다. 제가 명상을 시작하면서 수학 성적이 올랐습니다. 잠도 더 잘 오고, 잠을 잘 때 편안해져요. 기분도 더 좋아지고요. 우울했던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명상이 이렇게 큰 도움을 주는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냥 좀 더 나아질 것만 같았던 그 명상이 저한테 많은 감동을 주었어요. 인천으로 전학와서 슬프고 풀이 죽고 낯설었어요. 하지만 명상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도 좀더 가까워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명상을 더 열심히 하고 오랫동안 명상을 하고 나서 행복한 마음을 내 마음에 담아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정훈 어린이

명상하니 친구가 더욱 많아졌고, 아이들이랑 싸우지 않도록 생각이 말려줍니다. 그리고 형하고 많이 싸움을 했는데 이제는 조금만 싸웁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니 상쾌해 집니다. 이제 글씨도 잘 써지고 알아서 잘 되어 집니다.

현정환 어린이

난 명상하기 전에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쉬고 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수학문제중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명상을 한 후에 푼다. 그러면 수학 문제가 잘 풀린다. 또 동생과 싸우는 일도 별로 없어졌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요즘 들어서 행복해지고 있다.

요즘들어 아빠도 명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아빠께서 훨씬 자상해 지셨다. 또한 원수로 지내던 친구들도 요즘은 아주 친해져서 우리 학년 아이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또 동생에게 양보하는 일도 아주 많아졌다. 그래서 난 지금 명상하는 내가 아주 행복하다.

김형봉 회장

나는 고혈압 때문에 초월명상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TM을 시작하니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초조함과 우울증이 사라졌다. 이제 TM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는데 늘 웃으니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한다. 사업도 전의 조급한 마음에서 지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명상은 내게 평온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유 토피아에서 유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명상을 다 마치고 느긋하게 쉬고 있으면 화학기술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제품개발에 크게 활용하고 있다.

양계탁

” 내 심장을 지켜주는 초월명상 ”

나는 3년 전 심장경색으로 입원해서 지금까지 복약을 하고 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 지만 내 경우는 남달리 과격하고 선천적으로 예민한 성격 때문에 사회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발병 요인의 전부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던 얼마 후 TM을 배웠다. TM은 아침 저녁 두 차례 20분 동안 경험하는 조용하고 신비스러운 세계였다. 부딪치는 하루 일과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TM을 시작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벼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또 복잡하던 잡념들이 하나 하나 정리되면서 나 아닌 내가 돼 가는 것이다.

이제 TM을 시작한 지 2년이 됐다. 시골에 직장을 둔 나로서는 남보다 두 시간은 먼저 일어나야 하고, 버스로 장거리를 왕복하는 바쁜 시간을 쪼개서 활용해야 한다. 퇴근 후에는 작품 제작에 임해야 하므로 늦게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는 과중한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명상은 내 일과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명상시간을 빼앗기고 늦게 잠자리에 들면 이내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에 곧 일어나 명상을 시작한다.

이처럼 계속적인 수면부족 상태에서 다음 날도 똑같은 일과로 되돌아간다. 이와 같은 피로 축적과 과격한 외적인 충격 그리고 흥분이 있을 때 심장에 통증이 온다. 그러나 TM을 실시한 후부터 매사에 신중을 기하게 됐다. 즉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관찰하고 사고하는 자세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이 TM은 어느 개인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다.

– 화가 / 교사

조보경

” TM은 내 인생의 동반자 ”

초월명상을 시작한 것은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겪고 난 뒤였다. 세 번째 고비를 넘기고 깨어나면서 내 생을 남을 위해 바치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 후 내 인생은 방향이 잡혔다. 그리고 초월명상센터를 찾아갔다.  내 경우는 특별했는지 모르지만 초월명상를 배우는 순간부터 기쁨이 터져 나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국민학교도 못 갔기 때문에 한글도 제대로 몰랐다. 인생을 헤치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내 스스로 생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이 세 번째 경우였다.

그런데 초월명상을 배운 후로 내 인생은 척척 풀렸다.  어느새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도 하게 되고 이젠 정신세계에 관한 서적을 한 달에도 여러 권 읽고 있다.  한글도 모른다는 나를 대기업 사장이 고용해 준 일, 내 사업이 수월하게 풀려 가는 일, 좋은 아내를 맞이한 일 , 무엇보다 내적인 기쁨이 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 항상 웃음이 얼굴에 그치질 않는다. 사업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늘 행복에 젖어 있어 스트레스 받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니 자연히 주변 사람들도 나를 좋아하고 따른다.

잠을 자거나 깨어있거나 내면의 고요와 환희가 계속 유지된다. 심지어 술을 먹어봐도 그 상태를 잃지 않는다. 나의 이런 내면 상태를 혹시 이해해 줄만한 인물이 있는가 하고 여기 저기 문의해 보고 수행단체의 유명인들을 찾아 가보면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지 체험에서는 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을 느끼곤 했다.  다른 단체를 탐방해 그 기법들도 체험해 보았지만 초월명상처럼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것은 아직 없었다.

– 사업가

이금재 대표

” 무한대(無限大) 그것이 내 목표이다 ”

저는 어렸을 적에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호기심이라기보다는 당연이 알아야 하는데 모르는 것들이었습니다. 답답해 어른들께 물어보면 어떤 분은 스스로 연구해 보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멍청한 질문을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몹시 궁금했던 것은 ‘하늘은 끝이 있는가?’ ‘끝이 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따위라든가 아버지가 시키신 우리 가계(家系) 항렬자 외우는 숙제를 하다가 시조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물었다가 다시 그 끝은 어딘지 물어보아 아버지를 곤란하게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궁금한 차원에 그치지 않고 모른다는 자체가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놀이 공원의 청룡열차를 탔는데 언제 내릴지를 모르면 얼마나 두려울까요. 바로 그 심정이었습니다.

커가면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고 쉬운 대답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0대가 한참이던 어느 때 서점에서 ‘이것이 TM이다’라는 책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흥미가 있었고 책에 있는 주소를 찾아 서울의 초월명상센타에 올라와 명상을 배웠습니다. 그 때는 여러 가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숨을 쉬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명상교사가 외국인이었고 한국분이 통역을 해 주었는데 그 분이 혀를 끌끌 차면서 안 됐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뒷머리부터 척추에 이르는 신경이 의식되면서 약간 스트레스 저항력이 생기는 듯했습니다. 점검을 받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고 얼마 있다가 군에 입대했습니다. 군에 가기 전에는 간간히 명상을 했으나 규칙적으로 하지는 못 했으며 군에 가서는 명상을 할 엄두도 낼 수 없었습니다.

제대 후 직장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 아이도 태어났으며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신경을 쓰며 남과 다름 없는 평범한 삶이었지만 40대 중반까지는 정말 끔찍한 스트레스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매우 온순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했으나 어떤 사람은 굉장히 공격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이 있지만 저는 될 수 있으면 참고 잘 지내고 싶어서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희생적이며 열심히 일한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리고 업무에서 남보다 월등한 실적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무서워하고 적대감마저 있어서 아주 가끔 외부의 스트레스 요인(사실은 대부분의 스트레스가 자신의 문제이나 남 탓으로 반응하는 것이 보통임)에 대해 폭발적으로 저항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작은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건 내가 진정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회적인 성공도 아니고 부(富)도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궁금하고 두려웠던 의문들의 답을 모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다른 말로는 무한대(無限大)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수학시간에 이를 배웠지만 이해하지 못 했고 생각하면 할수록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해 모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정체성이라면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국적이나 가문, 정치적인 성향이라든가…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고 사람과 우주에 대해 이해하지 못 하며 사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소위 깨달음을 위해 출가를 한다든가 특정 종교에 귀의한다던가 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것은 포기했습니다.

1998년 어느 여름날 명상센타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았습니다. 다행히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고 센타를 방문해 다시 명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는 소위 직장에서의 출세는 포기하고 개인 세무사사무실을 준비 하던 중이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 위해 명상을 다시 해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얼마 후 개업을 했고 지금까지 사무실을 운영해 오면서 명상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 수련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습니다.

명상을 시작하면서 내 삶은 조금씩 변했습니다. 스트레스와 싸우기보다는 타협할 줄도 알고 지금은 어지간한 스트레스는 금방 잊어 버립니다. 명상을 하다보면 가끔은 이색적인 경험도 합니다. 어떤 때는 행복의 절정에 빠지기도 합니다. 언젠가 센타에서 요가와 명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절정의 행복에 빠졌습니다. 삭막한 도시가 몹시 아름다웠으며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걸음은  날개 달린듯이 아주 가벼웠으며 공격성은 전혀 없어지고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이제 청룡열차가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일 명상을 하려고 눈을 감으면 금방 행복해지며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청룡열차에서 내릴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믿는다기보다는 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확실해졌습니다. 아직 무한대(無限大)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언젠가는 다 이해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표를 위해 애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냥 하루 두 번 명상을 할 것입니다.

– 다담솔루션 대표

신윤호

” TM으로 우울증을 극복했다 ”

초월명상(TM)을 시작하기 전에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던 사업은 신경을 전혀 못 쓸 정도여서 직원들에게 아예 맡겨 놓은 상태였다.

TM 을 배우기 전날까지는 전혀 TM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없었다. 둘째 형님의 친구분이 TM을 배우고 좋다고 권했기에 둘째 형님 손에 억지로 끌려서 마지못해 TM센타에 갔다. 그런데 TM을 배운 뒷날 그렇게 자신 없던 운전을 해서 의정부에서 서울 대치동 TM센타까지 교육을 받으러 갔다. 그리고 그 뒷날도. 뭔가 분명히 변화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TM을 시작한 1주일 후부터는 차안에 담배가 놓여있어도 손이 안 가는 것이었다. 하루 다섯 갑씩 피우던 골초에게 기적 같은 일이었다. 하루 두 번 명상시간이 제일 기다려졌고  식구들도 내 변화에 놀라기 시작했다.

지금 내 삶이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그 때를 생각하면 악몽 속의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다. 명상센타 선생님들의 말씀은 심각했던 우울증을 수개월 사이에 회복한 것이  규칙적인 시행 덕분이라고 칭찬을 하신다. 때로는 도시락을 싸들고 하루 종일 산속에서 마음을 달랜 적도 여러 번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하루 두 번 초월명상 시행은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께 TM의 축복을 빈다.

– 사업가

심상진

“TM은 신앙의 성장을 돕는다”

내가 TM을 시작한 동기는 건강 문제 때문이었다.
1973년, 사업에 실패한 후 절망과 좌절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위 장은 좋지 않아서 소화도 되지 않고 누구하고 대화를 하려고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었다.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매일 밤 계속되는 불면증으로 몸은 쇠약해지기만 했다. 저녁이 되면 무섭고 우울한가 하면, 세상을 내다보면 더없이 쓸쓸하고 슬프기만 했다. 이렇듯 병이 심화되기 이전에 최면술을 배우러 다니던 모 심리연구소에 찾아갔다. 그러나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서 그대로 나오고 말았다.

다시 집에서 위생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신과가 생기기 전이라 내과에서 주는 신경안정제와 위장과 심장을 풀어 주는 약을 1년 반 동안 복용했다. 그러자 약에 습관성이 되어서 약 없이는 하룻밤도 잘 수가 없고, 수면을 취하지 못한 날은 외부 사람들과 한마디도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위생병원에서는 다른 개인 정신과의원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아 보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개인병원의 진찰은 환자에게 위안은 커녕 두려움만 커지게 하는 것이었다. 1년 이상 치료를 받아도 힘들다고 하면서 가족들을 많이 피곤하게 했을 거라고 까지 했다. 그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러한 말들은 전혀 희망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우울증만 부채질했다. 병원에도 여유가 없어서 계속 다닐 수가 없었다. 결국은 약방에서 진정제를 사다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그 런데 1977년 11월의 어느 날, 한국일보를 보니 TM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자 설명을 해 주는데, 생각이 자꾸 그쪽으로 기울면서 마구 궁금해졌다. 12월 며칠에 공개강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TM센터를 찾아갔다 강의를 듣고 보니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서 1978년 2월 5일에 TM을 배웠다.

처음에는 TM을 하면서도 신경 안정제를 먹었다. 그러나 약 2개월쯤 되자 차차 몸이 안정되면서 약을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호전되었다. 아침저녁으로 20분 정도의 TM을 하면, 비록 육체적으로 고달픈 막노동이나 거리의 행상을 한다고 해도 마음은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매사를 더 정확히 보고 자신을 개선해 나가게 된다. TM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과 TM기법을 가르쳐 주신 마하리쉬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사업가 / 장로교회 집사

김진철

저는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기에 늘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초월명상을 시작한 후 제일 눈에 띤 변화는 숙면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무력감, 우울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건강이 좋아지면서 운동 중에도 숨이 덜 차고 몸이 훨씬 부드러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을 잘 마친 것은 초월명상에서 얻은 편안한 마음과 집중력 덕분이었습니다.

김혜경

제 성격은 내성적이라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고  큰일이 있으면 쉽게 초조하고 불안해졌어요. 1년에 두 번씩 하는 그룹전을 준비할 때 유난히 안 되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은 영락없이 악몽을 꾸었어요. TM을 시작하고부터는 악몽은 커녕 뒤척임도 없이 숙면을 취하게 되더군요. 내 변화를 보고 치과의사인 남편도 TM을 시작했는데. 진료 받으러 오는 손님 중에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있으면 꼭 TM을 하라고 권합니다.

유철종 회장

나는 여러 방법들을 산업훈련에 적용해 오면서 무언가 더 나은 것이 있어야겠다고 스스로 느껴왔다. 우선 본인의 건강과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도 어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TM을 시작했을 때 너무나 쉽게, 거의 저절로 깊은 의식과 이완을 맛보았다. 다른 사람도 나처럼 경험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초월명상 중 뇌파가 알파뿐만 아니라 그 이하로 떨어지고, 더구나 그 뇌파들 간에 동조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보아 근본적인 의식개발법이 틀림없으리라 본다.

– 산업훈련협회 회장

방건웅 교수

나는 학생시절에 초월명상을 만났다. 그리고 특별히 초월명상의 효과를 본 것은 미국 유학 때었다.초월명상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힘든 학업을 마쳤을까! 명상을 하고 나면 피로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려 다시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정재각 교수

명상은 가볍게는 심신의 휴식이나 간단한 반성이나 염원을 위해 사용되지만 가장 심오하게는 인간존재의 핵심에 닿으려는 한 방법이다.

초월명상은 촉각을 다투는 현대인들의 실정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서 아침저녁 20분씩 시행함으로써 안정된 마음으로 직장에 출근하고 또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이 개인생활 개선 뿐 아니라 널리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초월의 길 완성의 길 》 추천사에서 – 범우사 발행

김상호 교수

참선을 하다가 TM을 배웠습니다. 불면증이나 혈압 치료는 문제가 아닐 정도입니다. 온 종일 잔잔한 즐거움에 휩싸이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명상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정도여서 ‘부처님 이 속에서 입점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김창달 회장

초월명상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대인관계도 활발해졌다. 1978년 말 20년 넘게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금연 직후 20년 넘게 다니던 한국은행에서 종합금융으로 옮기는 등 환경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금연에 성공한 것도 TM효과 덕분으로 믿고 있다. 동료들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70이 넘게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도 모두 ‘밥을 걸러도 명상은 빠지지 말라’는 조언을 잘 시행한 덕이리라.

대중매체가 말하는 초월명상

한국에서는 1만 5천명이
초월명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명상은 가볍게는 심신의 휴식이나 간단한 반성이나 염원을 위해 사용되지만 가장 심오하게는 인간존재의 핵심에 닿으려는 한 방법이다.

초월명상은 촉각을 다투는 현대인들의 실정에 맞게 개발된 것으로서 아침저녁 20분씩 시행함으로써 안정된 마음으로 직장에 출근하고 또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더구나 이것이 개인생활 개선 뿐 아니라 널리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까지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 초월의 길 완성의 길 》 추천사에서 – 범우사 발행

정재각 교수
전 정신문화원 원장
동국대 총장
전 창조지성학회 회장


초월명상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대인관계도 활발해졌다. 1978년 말 20년 넘게 피우던 담배도 끊었다. 금연 직후 20년 넘게 다니던 한국은행에서 종합금융으로 옮기는 등 환경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극심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금연에 성공한 것도 TM효과 덕분으로 믿고 있다. 동료들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70이 넘게 건강하게 활동하는 것도 모두 ‘밥을 걸러도 명상은 빠지지 말라’는 조언을 잘 시행한 덕이리라.

김창달
전 한국종합기술금융(KTB) 회장,
현 마이벤처 회장


제 성격은 내성적이라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잘 받고  큰일이 있으면 쉽게 초조하고 불안해졌어요. 1년에 두 번씩 하는 그룹전을 준비할 때 유난히 안 되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은 영락없이 악몽을 꾸었어요. TM을 시작하고부터는 악몽은 커녕 뒤척임도 없이 숙면을 취하게 되더군요. 내 변화를 보고 치과의사인 남편도 TM을 시작했는데. 진료 받으러 오는 손님 중에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 있으면 꼭 TM을 하라고 권합니다.

김혜경
화가


나는 학생시절에 초월명상을 만났다. 그리고 특별히 초월명상의 효과를 본 것은 미국 유학 때었다.초월명상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힘든 학업을 마쳤을까! 명상을 하고 나면 피로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려 다시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방건웅 교수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국가참조표준센터 센터장
뉴욕 주립대 교수


참선을 하다가 TM을 배웠습니다. 불면증이나 혈압 치료는 문제가 아닐 정도입니다. 온 종일 잔잔한 즐거움에 휩싸이고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마음이 평화롭습니다. 명상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정도여서 ‘부처님 이 속에서 입점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김상호
대통령상을 4회 수상한 교육자
전 대학설립심사위원회 위원장


나는 고혈압 때문에 초월명상을 시작했다. 그전에도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TM을 시작하니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초조함과 우울증이 사라졌다. 이제 TM을 시작한지 20년이 넘었는데 늘 웃으니까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한다. 사업도 전의 조급한 마음에서 지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명상은 내게 평온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유 토피아에서 유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또 명상을 다 마치고 느긋하게 쉬고 있으면 화학기술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라 제품개발에 크게 활용하고 있다.

김형봉
한국유지기술 사장


저는 연구직에 종사하고 있기에 늘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초월명상을 시작한 후 제일 눈에 띤 변화는 숙면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무력감, 우울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건강이 좋아지면서 운동 중에도 숨이 덜 차고 몸이 훨씬 부드러움을 느낍니다. 박사과정을 잘 마친 것은 초월명상에서 얻은 편안한 마음과 집중력 덕분이었습니다.

김진철
연구원
포항공대 물리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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